세상 이곳저곳/떠나다.

오빠의 코고는 소리가 안심이 되는 밤

갱양- 2017. 8. 21. 21:18

성남에서 7시 20분, 동해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달렸다. 7시 버스를 타야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어제밤 늦은 시간까지 집 정리가 끝나지 않아 난리를 쳤던 우리는 알람 소리도 무시하고 우선 자고 잠깐만 더 자다가 결국 6시 반에 기상. ㅎㅎ 에라이

잠을 택한 대신 가져가야지 했던 것들의 일부를 놓고 오고 동해공영버스터미널에 도착. 서울엔 폭우주의보가 내렸다는데, 이곳은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다. 카카오택시를 불러 동해항까지 이동. 20분정도 걸려 금새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동해에 있는 맛있는 밥집에서 매운탕이든, 생선조림이든 우리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배에 오를 생각이었는데, 이게 왠일.;; 주변에 식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ㅠ 우선 집에서 가져온 어머니표 옥수수와 찐계란(와.. 계란때문에 난리인데 우리는 남은 계란을 또 다 쪄왔네요)을 냠냠. 그러다 갑자기 오빠가 어? 줄서야겠는데? 티켓 창구를 보니 사람이 우글우글. 에이 설마- 늦게 발권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다가 겁나 후진 방에 걸리겠지!! 싶어서 후다닥 뛰어가서 줄을 서기 시작. 오빠는 우선 짐을 지켜라, 내가 줄을 서겠다 하는 기특한 마음으로 달려 나가긴 했는데, 아.. 아저씨들... 냄새... ㅠㅠ 냄새나요 ㅠㅠ 힝힝. 러시아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씻질 못하셨는지 땀냄새와 각종 음식, 뭔지모를 괴로운 냄새들이 콧구멍을 공격. 작전상 난 후퇴해야겠다. 싶어서 오빠와 교체. 오빠가 줄을 서라 미안하다. ㅎㅎ




출국 수속을 하고 우선 배에 올라서 한바퀴 둘러봤다. 시설은 낡았지만 있을건 다 있다. 일본 과자와 라면을 판매하는 매점, 터무니없는 저가 화장품을 비싸게 파는 듯한 면세점, 물이 반 정도 차있는 사우나, 참치찌개가 15000원이나 하는 레스토랑, 만원짜리 부페를 파는 식당, 층마다 숙소와 화장실이 있는데 3층이 가장 좋다. 3층에 로얄 스위트 같은 2인실이 있어서인지 가장 쾌적한 느낌. 우리는 이코노미 클래스로 예약하여 2층에 방이 있음에도 화장실은 꼬박 3층을 이용. ㅎㅎ


배에 올라 인터넷이 되는 마지막 찬스인지라 인터넷이 안되도 할 수 있는 게임을 폭풍 검색하여 다운받거나 가족과 지인들에게 카톡 인사, 페이스북 인사 등등을 하고 있으니 뿌우웅 배가 출발한다. 괜히 마음이 들떠 오빠에게 우리 어디가나용? 어디갑니까? 진짜 갑니까? 계속 물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떠나는데 이렇게 대책없이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ㅠ


선상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다 사진도 찍고 바닷바람도 실컷 맞고, 시커먼 바닷속을 보면서 여기에 빠지면 죽겠지 죽겠구나 여긴 어딜까, 이 망망대해에서 배는 어찌 알고 길을 찾아 러시아까지 간다는 걸까, 타이타닉도 떠올랐다가 세월호도 떠올랐다가 별 잡스러운 생각에 어질어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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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좁은 침대칸 옆에 오빠가 있다. 

도롱도롱 코를 골면서 잔다. 덥고 습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오빠가 겨우 잠들어 도롱도롱 내가 옆에 있다며 신호를 보낸다.

난 괜히 안심이 되어 다시 눈을 감는다.
내 옆엔 오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