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곳저곳/떠나다.

걷다보면 찾는 곳이 나타날지니, 블라디보스토크

갱양- 2017. 8. 25. 23:04

호스텔 - 블라디보스토크 역 - 핫도그 - 혁명광장 - 잠수함 박물관 - 영원의 불꽃 - 군악대 음악감상 - 배터리를 찾아 - 해변가 끝까지 - 케이블카 타는 곳 - 독수리 전망대 - 줌마 레스토랑 - 해변공원 - 호스텔


블라디보스토크는 알려진 관광지가 한 곳에 몰려있다. 조금 멀리 간다고 하면 새로생긴 마린스키 극장 정도? 블라디보스토크에 마린스키가 새롭게 오픈했다는 얘기를 듣고 공연 예매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방문하는 기간에는 어떤 공연도 없다. ㅠㅠ 다리 넘어 가는 건 다음 기회인가보다.

오늘의 일정은 아침에 역에 들러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을 실물 티켓으로 교환하고, 슬슬 걸어 시내관광이다. 내가 열차표와 러시아 일정을 계획한 대신 오빠는 각 지역별 세부 일정을 맡았다. 나름 꼼꼼한 오빠가 구글지도에 방문해야 할 곳과 먹어야 할 음식들을 다 태그하여 표기해 놓아 나는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ㅎㅎ

우선 티켓 교환. 역 내에서 처음에 티켓 판매하는 창구를 발견하지 못해 어디서 교환하지? 싶어서 옆에 공항철도를 판매하는 듯한 건물까지 들어갔다. 하.. 그런데 거기 앉아있는 러시아 언니, 엄청 불친절. 친절하길 기대한건 아니지만, 소리를 지를 것 까진 없잖아? 너 영어 못해? 이러는데, 해. 근데 니 발음 너무 구려. 승질대로 나도 소리를 박박 지르고 왔어야 하는데, 나 외국에서 너무 소심해진 나머지 히힝.. 하고 돌아섰다. 그러고 나선 어찌나 마음이 좋지 않은지. 의기소침해져서 아 나 몰라 하고 넋을 놓고 있으니 오빠가 이리 저리 검색하고 분주히 뛰어다니다 반갑게 소리친다. 티켓 판매기 찾았어!!! 야야... 처음부터 이렇게 찾았으면 됐잖아 ㅜㅜ 괜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더 우울해진다. 티켓을 출력하는 동안에도 이리 저리 헤메고 있으니 수화물 검색대에 있던 청년이 와서 이것저것 누르라며 알려준다. 친..친절해. ㅠㅠ 아까 상처 받은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티켓이 출력되니 마음이 좋다고 웃어보라길래 베시시 웃는다. 내가 웃으니 오빠도 웃는다. 미안하고, 고마운 오빠. (나중에 역 안을 헤메다 보니 역 안에 매표창구도 있고 다 있었다.에라이)



기분이 좋지 않은 핑계로 역 앞에 있는 핫도그 가게에서 핫도그를 하나 사먹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핫도그인줄 알았는데, 햄 하나 짜리와 햄 두개짜리 핫도그를 시켰다. 망. ㅋㅋ 다음부터는 서로 다른 메뉴를 시키기로 하고 앞에서 맛있게 냠냠. 앉아있으려니 한국 사람들 엄청 많다. 한국인가, 외국은 아닌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반가운 한국말. 묘하게 안심이 되면서도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하는 언어다.

걸어서 혁명광장으로. 그닥 볼 건 없다. ㅎ 선물가게가 있어서 들어갔더니 1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들을 파는데, 다 짐이려니- 생각하니 그닥 사고 싶어지진 않는다. 1층으로 나와서 잠수함 박물관이 있는 쪽으로. 바다 쪽에 군대가 있어서 허가증을 받은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없으니 멀리 길가에서 탱크나 군용 자동차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고 쭉 걸으니 영원의 불꽃이라고 불리우는 추모비와 1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공원? 같은 곳까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불꽃이라고 한다. 1941년-1945년. 고3 담임 선생님이 세계사 선생님이셨지만, 공부는 1도 안한 제자인지라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유럽이 나치에 의해 초토화되고, 러시아까지 침공 위기에 몰렸을때, 다른 나라들처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격하게 방어한 게 러시아 군대라고 한다. 러시아군이 버텨서 전쟁이 승리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들을 기억하는 불꽃은 계속해서 타올라야지.

테트리스 음악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올라가 보니 군악대가 공원에서 무료 연주회를 하는 듯. 공원의 작은 무대에서 관악대가 힘차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관악부 시절이 또 떠오르며 ㅎㅎ 내 악기 유포니엄도 찾아보고 ㅎㅎ 오빠한테 반갑게 알려줘보지만, 오빤 관심 없을 뿐이고. ㅋ 트럼펫도 호른도 섹소폰도 다 반갑다. 오랜만에 보는 관악기들. 오랜만에 듣는 그 시원하고 힘찬 소리들. 덥고 지친 가운데 작은 쉼을 선물해 준 그들에게 힘껏 박수를 보낸다. 

다시 잠수함 박물관으로 돌아가 입장료를 내고 슥 걸어가는데, 처음은 전시실 같은 공간이 이어지다 뒷쪽은 실제 잠수함 내부를 볼 수 있다. 어뢰 옆에 침대가 대롱대롱 메달려있는데 같이 자는 듯? 전시중엔 침대를 치우고 포대에 어뢰를 쏙 넣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 칸까지 나오니 왠 군인 아저씨가 서 있다. 포토 원헌드레드 루블~ 외치며 방긋 웃으며 오빠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운다. 아이고, 장사하시는 구나 싶으면서도 아저씨의 웃는 모습에 그냥 찍자, 싶어 셔터를 누른다. 하나, 둘, 셋! / 하나, 둘, 셋! 그래도 두세번은 찍어주시는 구나. ㅋ


우리는 주로 구글 지도에 있는 관광지를 중심으로 동선을 짰는데 잠수함 박물관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지나 개선문도 지나 쭉 걸으면 큰 포대가 있는 구릉 같은게 있다고 나와있어 산책하는 느낌으로 찾아가볼까 하여 걸었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 우리가 찾는 배터리는 보이지 않고, 거의 해변 끝까지 갔다가 포기.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올라갔다. ㅎ

독수리 전망대라고 블라디보스톸에서 꽤 알려진 산등성이 공터인데, 도시가 한눈에 보여 참 좋았다. 사실은 야경이 더 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는 시간이 꽤 늦을 것 같아 그때까지 밥도 안먹고 기다리긴 너무 힘들 것만 같아 5시쯤 올라 바라보는데,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고 살짝 구름낀 도시의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른 색깔을 보이며 더위와 피곤함에 지친 우리들에게 완벽한 휴식을 제공. 오빠는 러시아에 가자마자 추울 거라며 (심지어 발에 동상이 걸릴거라고 했음) 엄청 걱정을 하더니 블라디보스톡의 열대야를 경험하고 나서는 그 말이 쏙 들어갔다. ㅋ 걸터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전망대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내려가는 건 살살 걸어내려가기로.



적당히 배가 고플 시간이라 킹크랩으로 유명한 주마zuma라는 레스토랑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내려오는 방향(아파트 단지쪽으로 내려옴)으로 직진하여 한참 걷다보면 근처 어딘가에 있다. 맛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있던 터라 킹크랩 1.5kg과 야채 샐러드, 관자 스시, 똠양, 게살튀김과 맥주를 주문. 대식가 부부답게, 또 먹는데 아끼지 말자는 우리의 소신으로 엄청 주문하고 엄청 먹어댔다. ㅎㅎ 역시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 먹는데는 아끼지 말자. =)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대고 밖으로 나오니 해양공원이 바로 앞이다. 놀이공원쪽을 가로질러 해양공원 끝까지 다시 걷기 시작. 우리 오늘 엄청 걷는 구나, 내일 돌아볼 코스 오늘 다 가는거 아냐? 걱정하면서도 낮과 밤은 분위기가 다르다며, 밤 공기가 선선하니 좋다며, 날이 적당하다며 갖가지 이유를 대며 우리의 몸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해양공원은 환하고 가게 문이 많이 열려있지 않은 낮보다 온갖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달구는 밤이 더 좋은 듯.


블라디보스톡에서의 하루가 또 이렇게 저문다. 종일 걷다보면 원하는 장소가 눈 앞에 나타나기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도 한 이 동네. 러시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보니, 내가 간 곳이 지나친 동상이, 사람들의 추모비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다만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읽은 러시아 문화를 담은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사람들의 정서와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려주는것 같아 그부분은 완전 감사하게 생각. 앞으로 20일 정도를 더 머물 나라이니, 천천히 둘러보고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나와의 다름이 싫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임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