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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 미술관, 내가 다시 온다_상트페테르부르크

갱양- 2017. 9. 16. 19:22

기필코

어제 숙소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그대로 기절해 늦은 아침까지 계속 잤다. 일어나야 하는데 머리속에선 계속 반복해서 알람이 울리는데 마디마디 삭신이 쑤신다는게 이런 느낌인지 납덩이를 어깨와 등에 올려놓은 듯 몸이 무거워 움직임이 코끼리 엉덩이처럼 둔하다. 안돼, 오늘은 우리가 좋아하는 미술관 가는 날이야. 일어나. 뜨거운 홍차 한잔으로 강제로 몸을 깨우고 아침을 먹는다. 점...점심인가 ㅡㅡ;;;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었다. ㅎㅎ

# 에르미타주 미술관
미술관 위치는 여러번 보기도 하고 화장실이 급할때 스윽 들어가 이용한 적도 있어서 넘나 잘 알고 있다. 오늘도 걸어서 미술관으로 이동. 숙소를 관광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잡아놓으니 지하철이나 트램을 이용하기 보다 주로 걸어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이 걷는 날은 하루에 이만보도 거뜬히 걷는다. 이놈의 체력이란... 운동 안해서 코스모스처럼 연약한 몸뚱이인줄 알았는데 실제 움직이니 길가의 잡풀처럼 강인하기만 하더라... 다만 지구력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다. 



미술관에서 가방과 겉옷을 맡기고 들어간다. 감사하게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다. 심지어 김성주 아나운서와 손숙 선생님의 목소리. 대한항공에서 지원해줬단다. (감사합니다 대한항공님) 역시 전문 성우의 목소리는 일반인과 확연히 다르다. 피의 구원 성당 오디오 가이드는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억양과 속도, 강약의 책읽기었가면 김성주 아나운서의 오디오 가이드는 공간을 설명하는 듯 작품을 설명하는 듯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어폰을 가져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가져가질 않아 스피커를 통해 오빠와 함께 듣는다. 


입장하는 계단부터 설명이 있다. 공간별 설명이 필요한 곳은 리플렛에 번호가 써있고 설명이 있는 그림들은 그림 번호 옆에 헤드폰 이미지가 부착. 처음엔 우와, 하면서 정신없이 번호를 찾아 눌었는데 설명이 정말 넘나 많다 ㅎㅎㅎ 그만큼 미술관에 중요한 작품들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관람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일텐데- 느긋한 우리 커플은 봤던거 또보고 다시보고 반복해 보고 오래 보고 ㅠㅠ 를 했다. 오늘이 일요일인줄도 모르고 ㅠㅠ 천천히 보고 있는데 사람이 계속 줄어든다. 단체관광객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방해하고 이래야하는데 너무 관람 환경이 쾌적하다. 수상해진 오빠가 미술관 가이드를 펼쳐보더니 오늘 무슨요일? 일요일! 6시까지래. 허얼!!! 장난하냐 장난해!!! 토요일까진 분명 9시까지 오픈인데 일요일은 6시까지라니 ㅜㅜ 눈물을 머금고 약간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내 문이 철컥철컥 닫히더니 우리를 몰아가는 미술관 직원들. 문이 다 닫히고 오직 열려있는 문으로만 나가면 출구가 코 앞이다. ㅠㅠ 아직 우리는 이 미술관의 반의 반의 반도 못봤다구요. 애절하게 외쳐보지만 허공에 울리는 외침일뿐. ㅠㅠ 램브란트와 루카스 봤으니까 됐어.. 하고 나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렸는데 민정언니의 한마디. 피카소에 인사해 달라며. 피카소오? 피이카아소오오오오오오?????? ㅠㅠ 제가 그저 웃고 말지요. 눈에 흐르는건 눈물이 아닙니다. 세찬 바람에 흘리는 콧물입니다 ㅠㅠ 오빠와 부들부들 떨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다시온다. 에르미타주만 이틀본다. 평일에 온다. 아침 일찍 온다. 다짐만 백번을 하고 돌아선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지막날은 이렇게... 날이 짧다. 빨리 가는구나 시간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