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나랑 밀당하니?_탈린
아침부터 날이 꾸물꾸물하다. 핀란드에서는 하나님께 기도 해서 날이 맑았는데 여기선 기도를 안해서 이렇게 흐린가? 소오름- 그래도 한번 좋았으니까 한번은 나빠도 돼. 하는 이상한 마음으로 날씨 기도는 안하는 걸로.
어제 산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쨈을 찹찹 발라 우유와 함께 먹는다. 야미- 맛있다. 믹스베리 잼을 샀는데, 새콤달콤 맛있는 듯. 숙소에 커피머신과 전용 커피도 준비되어 있어 머신에 커피팩?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맛있는 커피도 한잔. 사치스럽게 오늘도 시작하는구나. 누가 우리를 보고 배낭여행자라 하겠니, 이렇게 잘 먹고 이렇게 편히 다니는데;;;
그릇을 씻고 나갈 준비를 한 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비가 올 것 같다!! 하고 우산도 챙기고 점퍼도 여러겹. 역시 집 밖을 나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 히잉- 벌써부터, 하는 마음으로 우산을 나눠쓰고 사이좋게 걷는다. 잠시 후 비가 개 다시 우산을 접고 걷다가 다시 비가 와서 우산을 편다. 이놈의 날씨, 장난하냐, 그래도 장난해라- 계속 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결국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 할 수없이 우산을 쓰고 탈린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이 도시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정말 손끝하나 건들지 않은 듯 도시 배수가 엉망이다. 물 웅덩이가 가득 고인 도로에서 차가 지날때마다 물은 좍좍 튀어 지나가는 사람이 젖기 에 딱 좋고, 그 크기는 어찌나 깊고 넓은지 폴짝 뛰어 넘어가기 어려울 지경. 안그래도 잘 젖는 신발이라 비오는 날 조심해서 걷는데, 이곳은 조심하고 말고 할 것 없이 이미 홀딱 젖어버렸다-
탈린 첫날인데, 비가 이렇게 오니 한숨이 절로- 아침 내내 비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너무 힘이 든다. 우선 식당에 들어가 밥이라도 먹으면서 비를 피하자, 싶어서 광장을 둘러싼 사방이 식당인 곳에서 적당히 마음편한 인도음식으로 낙찰.
# Maharaja Restaurant
2층으로 안내 받아 올라가 메뉴판을 살핀다. 분명 아래 런치 메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전달받은 메뉴판엔 따로 없는 것 같아 주문 받으러 온 직원에게 런치 메뉴 있지 않아? 하고 물었더니, 어- 그거, 하면서 한장짜리 메뉴판을 다시 가져다 준다. 샐러드와 커리 2종류(야채 커리와 하나는 선택), 밥과 난, 디저트로 구성되어 14유로. 메뉴판 보고 하나하나 고르느니 이게 낫겠다 싶어서 오빠는 치킨을, 난 콩 커리를 주문. 해외 나와서 자꾸 고기만 먹게 되니 의식적으로 비건 메뉴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군아...
잠시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식판 ㅋㅋㅋㅋㅋㅋ 우와, 인당 14유로짜리 인도 음식이 식판에 담겨 나오는구나 ㅠㅠ 대다나다. ㅋㅋ 은색 철로 만들어진 식판에 밥과 커리가 가득 담기고 위쪽 반찬 3개 담길 오목한 곳엔 디저트 빵 하나, 샐러드 조금, 야채커리가 담겼다. 다행히 난은 다른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ㅋㅋㅋㅋㅋㅋ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지금 얼마짜리 밥을 먹고 있는지 멘붕이었던 식사.
주문을 할때쯤 그친 비에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식사를 그럭저럭 마치고 나니 비가 후두둑 다시 쏟아진다. 날씨가... 미쳤.... 아니 들어와서 쉴때는 비가 멈추고 나가려고 하니까 왜 다시.;;; 어이가 없다- 하면서 어떡할까, 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상태로 구시가지를 계속 도는건 무의미, 집 근처 마트로 가서 대충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좀 쉬자, 하고 방향을 옮긴다.
# Kristiine Shopping Centre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 H&M부터 네일숍까지 매장들이 들어서있고, 큰 마트도 하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마트 구경 먼저. 각 나라의 식재료를 만나고 그것으로 식사를 만들어 먹는 재미를 탈린에서도 느껴봐야지! (이미 어제 삼겹살 양껏 먹어놓은 주제에... 익숙한 재료 아니면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주제에... 요런다 요래)
오빠는 포터 종류의 맥주 하나 난 애플 사이다.(라고 쓰고 알콜 도수는 4.5%라고 읽는다) 포터는 맥주의 종류 중 하나인데 예전 유럽에서 곧잘 먹었다고 하나 라거 등의 맥주가 유행하며 만드는 지역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그 중 발틱 맥주를 만들고 있는 나라로 다양한 도수와 예쁜 패키지의 맥주가 나란히 진열된걸 보고 night 라는 이름의 10.5%짜리 맥주를 골라온 호오빠님. 네네- 맛있게 드십시오, 하고 빵이며 땅콩같은 군것질 거리들을 주섬주섬 담아 계산대로-
요 정도 시간이면 비가 많이 갰겠지? 싶어 문쪽으로 나서니 왠일 비가 계속 오고 있다. 하아, 더는 움직일 힘이 없는데, 하면서 내 몸은 자연스레 H&M으로 이동. 움직일 힘은 없어도 쇼핑할 힘은 있나보다.;;
# H&M
다 아는 의류매장. 여기선 뭘 파나, 싶어 스르르 자연스레 올라갔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가격이 있다. 5유로- 여기 걸려있는 옷 전부 5유로라고오???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고 옷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털 니트 하나를 찾았다. 내건 됐고, 오빠걸 찾겠다 하는 마음으로 남성복쪽으로. 역시 5유로 코너가 있다. ㅎㅎㅎ 왜죠? 왜 이렇게 저렴한거죠? 하면서 니트 하나를 골라 오빠에게 요거? 조거? 하고 보여주니 오빠도 회색 긴 니트 하나를 선택. 둘이 합해 10유로. 마음이 뿌듯하다. ㅠㅠ 겹쳐 입기 좋은 아이템으로 골랐네, 신이 나서 이제 집에 가면 되겠다- 하고 나온다. 비가온다. 집에 가는건 좀 더 미루자. ㅠㅠ 문 앞에 있는 커피숍으로 고-
# Robert's Coffee
핀란드에서부터 자주보이던 커피 브랜드. 핀란드에서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었는데 탈린에서 가본다. 핀란드에서의 인테리어는 블랙을 메인으로 한 클래식한 느낌이었는데, 이 매장은 화이트와 레드가 메인 컬로 쓰인 세련된 느낌. 지역별로 조금씩 인테리어가 다른가?
카푸치노 한잔과 코코아 한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비가 그쳤다. 으아아악- 진짜 날씨, 정말 죽을래? 아직 음료수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비가 그치면 어쩌자는거죠? 괴로워하다 오늘은 이런날인가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코코아를 한모금 홀짝. 따뜻하다. 날씨 밉다. 그래도 이 쇼핑몰은 와이파이가 터지니까, 인스타도 하고 검색도 하면서 다시 비가 그치는 타이밍을 기다린다.
비가 다시 잦아들어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비오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싫어하며 집으로 인- 살았다, 하고 소파에 누워 뒤척뒤척하고 있는데 오빠가 방글방글 웃으며 옆으로 온다. 왜? 이거 좀 봐아- 하면서 보여준 날씨 앱. 지금 이후로 탈린은 매우 맑답니다. 아악-
그래, 오늘은 이런 날이었으니까- 이런 날도 있는거니까- 괜찮아- 후하후하- 푹신한 침대에서 완전 늘어지게 잠이나 자 보겠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