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곳저곳/떠나다.

터벅터벅 걸어 올드타운으로-, 바르샤바

갱양- 2017. 9. 27. 05:13


어젯밤에 온갖 모기님들께 공격을 당한 우린 온 몸이 울긋불긋. 오빠는 자다가 오른쪽 눈을 먹혔다며 슬피 울었고 난 목과 팔 얼굴에 영광의 상처들이... 밤새 앵앵대는 모기 소리에 불침번을 서는 듯 번갈아가며 일어나 탁탁 모기를 잡았지만 그 수에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호빵맨 스티커를 여기 저기 붙이고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오빠가 요거 챙길때 내가 한숨을 쉬며 왜 가져가냐 마음속으로 외쳤던 아이템인데 결국 여기서 이렇게 쓰는구나. 러시아 모기를 그렇게 검색했는데 폴란드 모기에 당하고 말았다. ㅠㅠ
오늘 아침은 빵과 오렌지쥬스, 스크램블 에그와 햄. 아침부터 과하게 먹는다. ㅎㅎ 버터를 녹여 스크렘블 에그를 하고 햄을 굽고 빵도 굽고.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 따뜻한 햇살 속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닦는다. 설거지를 끝내고 먼지가 쌓인 가스 스토브를 슥슥 닦으며 이 집 주인은 그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지 않은건 아닌가 하는 의심과 함께 우리가 청소를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한다. 심지어 호오빠가 더럽다를 연발하며 바닥을 닦고 있으니. 에어비앤비로 돈도 벌고 게스트가 와서 청소도 해주고. 이렇게 돈 벌면서 살아도 좋겠다며!
바르샤바의 숙소도 거의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어딜 가든 도보로 이동이 대부분 가능하다. 오늘은 쇼팽 박물관을 거쳐 올드타운을 둘러볼 계획. 쇼팽의 도시에서 쇼팽님과 처음 만나는 날이다. 헤헤.

# 쇼팽박물관
건물은 또 공사중. 아시바가 외관을 가리고 있어 제대로 된 외부 모양새를 볼 수 없다. 구글맵에 마온 사진으로 외관 감상. 망할 보수 공사.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들어가면 쇼팽의 일대기에 관한 전시가 있고, 중간중감 작은 부스의 음악 감상실이 있어 주요 음악들을 들어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입장시 받은 카드를 터치패드에 가져다대면 해설이나 영상, 음악이 흘러나오는 형태. 오오 음악가에 관한 박물관은 신기술이 적용되어 있군아! 영어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읽어볼 순 없었지만 사진과 악보, 그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둘러보고 지하로 이동. 지하엔 음악 테이블이 놓여있다. 각 테이블마다 마주르카, 녹턴, 왈츠, 발라드 등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형태. 마주르카 테이블에 앉으면 넘버를 하나하나 골라 다 들을 수 있다! 올레!! 쇼팽의 음악을 이렇게 앉아 하나하나 들을 수 있다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테이블을 옮겨다녔다. 그리고 작은 콘서트홀 발견. 이건 뭔가 싶어서 밖에 붙은 안내 문구를 읽는데 2016 쇼팽 콩쿨 연주자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고!! 으악 그럼 조성진 아냐!! 하고 뛰쳐들어갔더니 역시 조성진의 콩쿨 비디오 영상이 나오고 있다. 으아아- 이게 왠 횡재니 ㅠㅠ 정면에서 측면에서 손가락 하나하나 촬영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울컥- 내가 이걸 보러 여길 왔구나, 카이를 만나러 바르샤바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운이 좋아 조성진 연주 타이밍에 맞춰들어갈 수 있었던듯 다음 연주는 중국계 여자분이라 우리는 조심히 콘서트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자 오빠는 나 잘했지? 하며 방긋방긋 웃는다. 너무 잘했엉!! 고마오 오빠!!!❤️❤️❤️ 하트를 날려준다.
위로 올라가면 방향성 스피커가 복도에 놓여있어 그 앞에 서면 음악이 나온다던지 하는 재미있는 공간도 있고 한층 더 위로 올라가면 그가 떠난 연주 여행지들,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하나 전시되어 있다. 사실 난 피아노의 숲이라는 만화를 통해 쇼팽과 바르샤바를 알게 되었고 작년 조성진의 콩쿨 대상으로 혼자 감정이입하며 흥분한터라 상상하던 공간과 음악을 실제 눈으로 본다는 기쁨과 감동이 컸다면 쇼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조용히 그의 음악을 듣고 그가 남겨놓은 것들을 살피며 음악을 도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쇼팽 박물관을 빠져나와 올드타운을 향해 걷는다. 오빠가 길을 살짝 잘못드는 바람에 공원을 걸어 올드타운을 향해 직진. 난 가면서 계속 이 길이 맞느냐 사실이냐 왜 길을 잘 못 들었냐 타박하면 오빠는 슬픈 표정과 삐죽 내민 입술로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 말한다. 난 또 그게 재밌어서 또 오빠를 타박타박 오빠는 또 엥엥징징. 재미있어라. ㅋㅋ

오르막길을 올라 올드타운 메인 거리로 스윽 들어간다. 오래전부터 이 거리를 걸었던 사람 마냥 자연스럽게.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에 괜히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눈 앞에 날리는 저 풍선 더미처럼 두둥실. 늘어선 레스토랑과 커피숍에 사람들이 들썩인다. 유난히 앞이 북적이는 레스토랑 앞으로 가니 한국에서도 폴란드식 식사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자코파네. 폴란드식 족발(골롱카)과 만두(피에로기)등을 먹는 식당. 배가 몹시 고픈 상황이라 어디든 들어가고 싶지만 이렇게 줄서서까지 먹고 싶진 않다. 족발도 만두도 지난 여행지에서 먹어보기도 했고. 그래도 뭔가 좀 다를까? 현지식 식사가 하고 싶을 때 다시 방문해보기로 하고 다른 식당을 찾아 터덜터덜. 광장근처까지 왔을때 코스타 커피 옆의 피자집에서 사람들이 1인 1핏자를 하고 있다. 역시- 핏자는 1인 1핏자쥬! 여기로 결정!! (사실은 한바퀴 더 돌고 와 결정)

# 트라토리아 루꼴라 Trattoria Rucola
들오가자마자 허겁지겁 페퍼로니 피자와 폴로(치킨 리조토) 스프라이트 하나와 레모네이드 하나를 주문하고 가게를 그제서야 여유있게 둘러본다. 조명이 희한하게 벽에 붙었고 별처럼 작은 전구가 반짝인다. 밤에도 이 조명 뿐이라면 어둡지 않을까 괜히 걱정하는 내게 오빠는 충분하다며 구석자리의 조도를 예로 들어 설명- 오호- 한국식 천정 주광색 똻-하고 밝은 조명에 익숙해져있다가 유럽으로 넘어와 간접조명만으로 은근히 방과 식탁을 밝히는 이곳의 문화에 어색한 나. 어젯밤 우리 집 식탁도 테이블 조명 하나로 어둠 속에서 고기를 먹었었지, 새삼 다시 떠오른다. 어두운 공간에서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었는데- 한국에 있는 우리 집도 조명을 바꾸면 어떨까 괜히 상상해보곤 다시 가슴을 친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고 좋아하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곧 음식이 나왔다. 폴로는 토마토 소스라고 생각했는데 크림 소스의 리조또. 페페로니 피자의 짜고 강한 맛과 부드럽고 순한 리조또가 꽤나 어울린다. 레모네이드는 그닥. 홈페이드라고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만드신 분이 맛있게 만드는 손맛은 없는 듯. 오빠가 주문한 스프라이트가 더 시원- 양이 적어서 문제였지만. 눈깜짝할 사이 음식은 사라졌다. 도대체 우린 무얼 주문해 먹었던 것이냐. ㅠㅠ
그 사이 가게는 더 붐비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기 시작. 예약을 해둔 사람도 꽤 있는 듯 하다. 예약석 표시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거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꽤 있는 듯. 구글맵에서 검색한 가게 평가도 좋은편. 우연히 들어온 가게에서 꽤나 즐겁고 맛있는 식사를!

# 전망대 Taras Widokowy
레스토랑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탈린이었나- 엄청 무서웠던 올라프 성당 전망대 이후 왠만한 전망대는 공포스럽지 않다. ㅎㅎ 심지어 이 전망대는 계단도 시멘트? 같은걸로 되어 있고 나름 잘 정돈되어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다. 다리 아픈 것 빼곤 괜찮아- 곧장 위로 올라가 바르샤바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넓은 광장,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붉은 지붕과 파란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 드넓은 바르샤바의 평원이란 이런 것이었나- 높은 곳에 올라도 바로 다른 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한국과 달리 지평선의 끝까지 대지가 펼쳐진 폴란드. 미세먼지도 없고 산도 없는 탓에 내가 도시의 어느 끝까지 볼 수 있는 건지- 어디까지 보이는건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오랜만의 맑은 날씨가 반갑고, 또 반갑다.

# 올드타운
전망대에서 나와 바르샤바 왕궁을 향해 걷는다. 그런데 음... 어디부터 왕궁이고 어디까지 왕궁인거죠? 잘 모르겠습니다만... 슥 하고 보면 핏자헛이고 슥 하고 보면 마켓광장. 지금 왕궁을 나온겁니까? 여기도 왕궁인건가요? 잘 모르겠네요... 우선 걸읍시다- 하고 살랑살랑 거리를 걷는 우리 둘. 가능하면 다니는 도시마다 마그네틱을 사고 있어서 이 도시에서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 있으면 사려고 둘러보거나 구경하거나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둘러봅시다 하고 다니다 눈에 띈 빈티지샵. 우와- 빈티지샵에는 뭐가 있지? 하고 들어가 보니 낡은 군복을 비롯한 카메라, 오래된 종이, 칼, 장르와 숫자를 가리지 않고 좁은 사잇길을 따라 가득 쌓인 물건들. 빈티지를 모티브로 만든 신상인지, 정말 빈티지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가게의 기세에 눌려 뭐라고 하나 사지 않으면 않될 것만 같은 압도적인 느낌. 쌓여있는 쇼팽 브로치? 하나를 골라 계산한다. 쇼팽의 도시니까요- 요정도는 괜찮겠죠?
성요한대성당을 지나 계속 걸으면 나오는 마리퀴리박물관. 입장 시간은 벌써 지나 우리는 밖에서 구경하는 수밖에- 기웃기웃하면서 오빠에게 근데... 퀴리부인이 뭘 했을까... 위인전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뭘 발명했는지 당췌 기억이 안나네...전기인가..(에디슨은 뭘했니?) 요 따위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쇠퇴해버린 머리를 원망하는 수밖에... 할 수 있는게 없구나. ㅜㅜ (검색: 라듐 발견)
마을을 한바퀴 빙 돌아 조심스레 다시 광장쪽으로 향한다. 이렇게 걷는 도보여행도 즐겁다. 여긴 어디래, 뭐래, 라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쓸데없는 얘기나 노닥거리며 말도 안되는 얘기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빠의 뻥을 진심인가, 농담인가, 사실인건가 헷갈려하며 걷는 길이 즐겁게만 느껴지는 오늘.

빨리 돌아가서 저녁먹읍시다. 저녁. 오늘의 메뉴는 뭘까요- 어제 잔뜩 사다 놓은 것들 중에 뭘 먹어야 맛있다는 소문이 날까 달려간다. 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