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곳저곳/떠나다.

교통황무지, 슬로바키아/브라티슬라바

갱양- 2017. 10. 7. 15:08

오늘은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넘어가는 날. 부다페스트에서 생각지도 않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탓에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 뿐이었지만, 앞으로 우릴 기다리는 더 좋은 날들이 많기에 미련없이 숙소를 정리하고 나섰다.
3박4일동안 정말 최고의 위치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해먹었던 숙소도 안녕... 다음에 또 부다페스트에 놀러오면 이 숙소를 예약하고 싶을 정도로 넘나 좋았엉.

아침에 지갑을 열어보니 포린트가 좀 남았다. 헝가리에서 아웃하면 다시 쓸일 없는 돈. 다 쓰는게 일이다 싶어서 아침부터 쇼핑하러 나섰다. 로스만에 가서 유명하다는 악마의 발톱 크림이나 로즈마리 크림 같은거 좀 살까 싶어서 집에서 나서는 시간 30분 남겨놓고 뛰쳐나와 근처 로스만으로 직행. 생각보다 거리가 있어서 한참 걸었네. ㅡㅜ 후다닥 가서 크림을 보니 찾는 모양이 없다. 인터넷으로 부다페스트 쇼핑 리스트 뭐 이런 키워드로 찾았을 때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로즈마리 근육통 크림인데(오빠 어깨에 효과적일 듯) 빨간색이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빨간색을 찾아 헤메는데 몇군데에 들러도 당췌 보이질 않는다. 하.. 결국 5분 남기고 사질 못해 마지막 가게에서 초록색 크림으로 구입. 그냥 이건 어떤지 보려고 사는거다. ㅠㅠ 내가 진짜 사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야. 흑흑거리면서 나와 돌아가는 길에 환전소가 보여 남은 돈을 환전하기로. 버스비 빼고 다 털어서 환전하니 한 40유로정도 되었나. 혹시나 싶어서 영수증 받아오라고 했더니 환전소 할머니가 욕을 욕을... 아침부터 욕먹은 우리 오빠. 수수료 없이 환전해주는데 돈도 얼마 안되는 마당에 영수증까지 받아 챙긴다고 욕을 하는 듯. 아침부터 오빠 표정이 확- 구겨져버렸다. 미안해. 힝힝.

집에서 짐을 챙겨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유럽에서 처음 타는 기차다. 유럽하면 기차여행을 많이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 우리가 더 많이 이용한건 버스. 기차에 비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저렴하기 때문. 주간이건 야간이건 10-20유로 안팎의 금액으로 나라와 나라를 이동할 수 있다. 브라티슬라바까지 기차는 버스만 너무 탔으니까 기차도 한번 타볼까- 싶어서 예약.

기차역에 도착하여 티켓을 출력하고 승차장으로 이동하여 기차 탑승. 우리나라는 각 기차칸마다 바깥에 몇번칸이라고 딱딱 쓰여있었던 반면에 요 기차는 당췌 내가 어디서 타는게 좋은지 알 수가 없고 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닌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닫히는 시스템이라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때까지 한참을 들여다봐야했다. 아- 내가 눌러서 문을 여는 것이었구나, 를 알기까지 한참을 앞에서 서성였다는;;; 지나가는 역무원에게 이거 타면 되니? 묻고 여기서 타면 되니? 묻고 올라탄 기차에서 우리 칸을 찾아 이동이동.

문짝이 달린 6좌석 3등실칸이다. 마주보고 3명씩 앉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연석으로 끊어서 옆에 앉을 줄 알았더니 마주보고 앉아야한다. 흐흐. 더군다가 가운데 자리. 난 무슨 티켓을 예매했단 말인가. ㅎㅎ;;; 아 몰라 하고 짐을 정리해 두고 마주보고 앉아있으려니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지나간다. 알고보니 요 기차가 체코 프라하까지 가는 기차여서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까지 가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듯. 부다페스트와 프라하 여행을 이렇게 하는 것도 좋겠다- 우린 프라하는 못가는데 부럽다 힝힝. 잠시 앉아있으려니 역무원이 와서 문 앞에 각 좌석별 행선지 종이를 꽂아준다. 우리 좌석엔 브라티슬라바라고 쓰여진 종이를 꽂고 간다. 맞아요- 저희 거길 갑니다. 우리 옆으로 앉은 외쿡인(...머리가 노란색이면 다 외쿡인) 부부도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는 듯. 우린 경량잠바에 외투에 옷을 바리바리 껴입고 가는데 옆에 앉은 외쿡인 부부는 반팔티셔츠 차림. 와- 나만 이렇게 추운가. 건강이 안좋나. 운동을 안해서 그래 하고 또 힝힝 거리는 우리.

천천히 흐르듯 지나는 기차는 3시간쯤 달렸을까 우리를 브라티슬라바 역에 떨궈줬다. 와- 브라티슬라바!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다!! 하고 감격할 사이도 없이 멘붕에 빠진 우리들. 인터넷은 오빠만 할 수 있는데 구글 지도는 이 도시에서 무용지물.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트램을 타면 되는지, 버스를 타면 되는지, 지하철은 있는지 없는지 검색해도 나오는건 브라티슬라바 구글맵 이용 안되서 고생했다는 리뷰뿐. 으아악!!! 어쩌라고.;; 미리 브라티슬라바에 대한 조사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날 관광코스는 그날 검색해서 이동하는 우리이기에 ㅜㅜ 기차역에서 맞은 멘붕 상황에 제대로 멘탈이 무너진다. 특히 갱양. 애꿎은 오빠에게 왜 호텔에 가는 방법을 몰라- 왜 미리 조사를 하지 않았어- 라는 무언의 압력을 계속해서 보내서 오빠 멘탈까지 나가게 하는 어둠의 포스 작렬. (미안합니다)

오빠가 어찌어찌 브라티슬라바 트램 노선을 알아내고 티켓을 판매하는 창구에서 우리 호텔을 보여주며 티켓을 구매하고 몇번 트램타라고? 2번? 재확인하며 불안하게 트램에 올라 구글맵으로 요게 우리 호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을 거듭하며 호텔 근처 트램역에서 하차. 나의 어둠의 포스에 오빠 멘탈은 이미 심히 붕괴되었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구글맵과 트램 노선도 그림을 맞춰가며 길을 찾아낸 오빠가 기특할 따름.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누우니 살 것 같다. 여행 시작한뒤 처음 묵는 호텔이라는 이름이 붙은 숙소. 비지니스 호텔이라 너무 좋다는 말은 안나오지만,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들에 비해 푹신한 침대에 욕조도 있고 아침도 주는 데는 많이 없으니까 만족. 단점이라면 위치가 그닥 좋지는 않아 관광지에서도 좀 떨어져 있고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도 거리가 있는 편이라는 것?

아침부터 쇼핑하겠다고 부다페스트 거리를 쏘다니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착해서 헤메기까지 너무 많은 기력과 체력을 쏟아낸 우리는 밥이 필요. 밥. 밥을 먹자. 하고 트램역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이동. 부다페스트에서는 거의 해먹어서 사먹는 밥의 즐거움도 느껴보자꾸나 하고 후다닥 걸어 나갔다.

쇼핑몰을 한바퀴 돌면서 여긴 어떤 매장이 있는지 좀 보고 푸드코트로 직행. 나름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태국 음식도 있고 생선도 있고 중국 음식도 있고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도 있고. 생각보다 비싸진 않은 듯. 유로를 받긴 하지만...;; 오빤 중국 음식점에서 국물이 있는 탕면 하나와 탕수육 비슷한 음식을 하나 시키고 난 생선까스에 감자를 시켜서 나눠 먹기. 3개나 시켰더니 배가 터질 듯.;; 오랜만에 먹는 국물 음식이 오빤 입에 맞는 듯 흡입한다. 잘 먹는다 우리 오빠. 내가 많이 못사줘서 미안타.;;

맛있게 먹고 나와 쇼핑몰을 마저 한바퀴 돈다. 영화관도 있고 맨날 보이는 H&M도 있고. 약국도 있어 악마의 크림 팔지 않을까? 가깝자나! 하면서 들어갔는데 오빤 생강 그림이 그려진 차를 득템. 몸이 으슬거릴때마다 생강차 마시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 생강차를 브라티슬라바 약국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뭐- 우리나라 스타일의 찐한 가루차는 아니고 티백이긴 하지만 향과 분위기로 충분히 몸이 뜨거워지는 멘탈적 효과는 있는 듯.

아직 5시도 안된 시간이라 남은 시간에 뭘 해야하나, 했는데 오빤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아까 내 어둠의 포스에 정신이 많이 피폐해진듯. 다시금 죄송합니다.;; 쇼핑몰을 나와 들어가려는데 왼쪽으로 공원이 보인다. 잠깐 들러서 구경하고 갈까? ㅇㅇ 공원쪽으로 이동하니 공원 풀밭에서 단체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강사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중앙에서 포즈를 알려주고 둥글게 둘러싼 사람들이 강사를 따라하는데 꽤 재미있게들 한다. 공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왔다갔다 하거나 나무에 묶인 끈을 잡아당기며 근력운동을 하거나. 평일 오후 4시에 공원에 모여 운동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뭘까. 남자도 여자도 많았고 젊은 사람도 나이드신 분들도 많았다. 여행하면서 매번 궁금한 것들 중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모르지만 평일 오후 공원에 가면 나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운동하고 있는건 아닐까. 도대체 난 여태까지 어떤 삶을 살아온게야. 쓸데없는 생각들. 공원 한바퀴를 다 돌기엔 너무 크고 오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조금 걷다가 뒤돌아 나왔다. 나오면서 강가를 보는데 왠 오리, 백조 무리가 우르르. 동물 덕후인 우리 오빠 컨디션 안좋다 해놓고 정신을 놓고 바라본다. 한 아저씨가 3-4살쯤 되보이는 아이와 함께 나와 슬쩍 슬쩍 빵을 던져주는데 백조, 오리가 우르르 아저씨와 아이를 따라 가며 더 내놓으라고 꽥꽥 거린다.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 모습이 그저 즐거운 우리들. 가방에 빵 부스러기라도 과자 한조각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우리 가방 속엔 쓸데없는 초콜렛 뿐이구나.;; 한참을 바라보다 호텔로 돌아왔다. 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브라티슬라바의 오후.

숙소에 들어온 오빠는 바로 기절. 오빠가 산 생강차 한잔 마시고 자면 좋았으련만;; 어쩔 수 없다;; 난 뭘 할까 하다가 영화를 보기로. 외장하드에서 영화를 한 편 골라 재생. 키리시마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봐야지, 봐야지, 해놓고 여태 못본 영화. 아- 이런 이야기구나 하면서 별생각없이 따라가며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완전 깔깔거리면서 봐버렸다. 좀비씬은 압권이었습니다.

다 봤는데도 오빤 여전히 꿈나라. 다른 영화를 다시 보기로 한다. 이번엔 헝거게임. 러시아에서였나, 리투아니아에서였나 우연히 본 텔레비젼에서 헝거게임이 그 나라 언어로 더빙이 되어서 나오고 있었는데 스토리가 스물스물 생각나면서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서 관람. 1,2는 봤고 3을 볼 차례라 3을 보고 있는데 오빠가 스르르 일어난다. 잘 잤어?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얼굴을 살피는데 퉁퉁 부었다. ㅎㅎ 먹고 바로 잤는데 모.. 어쩔 수 없지. 자고 일어나서 내가 영화보고 있는걸 보더니 잠깐 같이 보다가
때를 밀어야겠다고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하는 오빠. 이 오빤 욕조가 있는 숙소에만 가면 그렇게 때를 민다. ㅎㅎ 나는 샤워하면서도 때를 잘만 미는데 이 오빤 꼭 욕조가 있는 숙소에서 몸을 충분히 불린 다음 하는 때밀이가 좋은가보다. ㅎㅎ 난 불려들어가 오빠 등짝을 열심히 밀어줄 뿐. ㅎㅎ

오빠의 불린 등짝에서 나온 때들이 포실포실한 하루. 나는 내일 밀기로 하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