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비내리는 새벽. 잠은 안오고.
여행을 시작한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3개월 동안 러시아와 유럽에만 있었는데- 남들 다 간다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는 못갔다. 하하. 오빠와 다음
유럽 여행땐 스웨덴에서 쭉 유럽 중앙을 가로질러 내려오기로- 이렇게 남겨놓은 지역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오지, 하고 정신승리.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땐 뭐가 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행 중반엔 계속되는 (오빠의)
운전과 캠핑에 하루가 한시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자동차 여행이 익숙해질 무렵 차를 반납하고 우린 다시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끈다. 매일매일이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이제는 약간 포기할 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에 욕심내지 않는 것. 그중 하나가 블로그 정리다. 일기쓰는 기분으로 하루를 정리하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다 기록에 남기려는 욕심을 내는 내가 보였다. 탁- 하고 손을 놓으니 팽팽히 잡고 있던 끈은 정신없이 튕겨 저 뒷쪽으로 사라졌다. 다시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더듬거리며 끈을 다시 붙잡아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
여행이 익숙해지자 예전의 일들이 생각났다. 좋았던 것들만 떠오르면 좋으련만 자꾸 내 꿈은 내가 가장 곤란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으로 나를 인도한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회사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회사를 다니며 좋았던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꿈 속의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속에서 난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상사에겐 온갖 가식과 친절로 비위를 맞추고 동료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변명을 거듭하며 자괴감이 밀려올때 잠에서 깨어난다. 괴로워지는 마음. 난 왜 꿈에서도 이렇게 비굴한걸까. 얼마나 더 착한척을 하고 싶어서 손가락질 안받으려고 이러는거야. 상대의 흐름에 내가 맞춰 따라가면 상대방도 좋고 나도 좋을 줄 알았는데 내가 좋았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두다가 내 기분이 틀어지거나 심기가 불편해지면 화난사람처럼 툭 쏘아대는 모습들이 자꾸 눈에 보여 괴롭다. 내가 다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여행을 하며 바보같고 멍청한 이기적인 나를 보게된다. 세상 똑똑한 척은 다하다가 사람의 호의와 사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내 실수엔 관대하면서 오빠의 실수엔 짜증을 숨기지 못하는 바닥을 치는 내가 있다. 그때마다 나를 용서하고 감싸주는 오빠가 그저 고맙고 감사할따름. 이렇게 부족한 내 곁에 오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를 숨기지 못하고 드러낼 때마다 찔리는 줄 알면서 감싸주는 다정한 사람. 내 부족함을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 오빠를 만난건 주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 내가 비틀거려도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줄 사람. 내사람.
앞으로 3개월이 더 남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보다 더 많은 일이 있겠지- 난 그때마다 잠깐 흐름을 멈추고 호흡을 길게- 멀리 내다 보는거다. 같은 실수는 두번은 없다는 듯. 닥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거다. (3월의 라이온에서 배운 삶의 지혜)
정신차리고 내 길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