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벅스, 반성하라
오늘은 아침부터 오빠가 한국에서처럼 스벅에서 브런치를 먹자고 노래를 한 날. 서구 문명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만 같던 러시아에서 스타벅스라니요... 제가 너무 무지하였습니다.... 반성. 밖으로 나서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와... 춥다. 하면서 호스텔 근처의 스타벅스로 쏙. 좋은 창가쪽 자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한 가운데 중간 자리가 남아있어서 갔더니 뒷쪽에 앉은 장기여행객으로 보이는 아저씨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서둘러 도망나와 중앙 테이블로 이동. 아메리카노, 라떼, 애플파이와 연어베이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냠냠 먹기 시작. 그런데 오빠가 인상을 쓰더니 입에서 무슨 조각을 하나 꺼낸다.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이놈의 나라는 연어 손질을 개떡같이 하나봐. 나도 블라디보스톡에서 먹었던 연어 팬케익에서 이물질 나와서 이후로 연어샌드위치 잘 안먹어( 그런데 왜 골랐을까, 모르고 골랐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오빠를 위로한 뒤 다시 도란도란. 그러다 문쪽을 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 어머님, 아버님이 한꺼번에 들어오신다. 여행사에서 이 아침은 아르바트 거리에서 관광하시라며 세워주신 모양인데 비오는 아침 아르바트 거리는 춥고 가게문도 제대로 열지 않은데다가 인적도 드물어서 한꺼번에 들어오신 모양. 삼삼오오 자리를 잡아 앉으시고 각자 커피 주문. 관광객 20-3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니 스탭들도 정신없는 듯. 구경하는데 오빠 표정이 다시 일그러진다. 입에서 다시 꺼내는 비닐조각. 헐... 부글부글 참는게 눈에 보인다. 오빠, 재수가 없네 ㅋㅋ 나는 한번도 안걸렸는데 오빠한텐 두번이나 걸렸을까. 니가 제대로 안씹고 먹어서 그냥 넌 먹었을꺼야. ㅡㅡ 헐.. 아니거든요. 근데 연어 아닌거 같아. 그래?? 설마 애플파이일까. 한조각 남았다. 먹고 나가자. ㅇㅇ 하고 마지막 남은 애플파이 한조각을 오빠 입에 넣는 순간. 빵!! 하고 오빠가 테이블을 세게 친다. 헉... 왜그래... 그리고 입에서 꺼내는 세번째 비닐조각. 심지어 사이즈도 크다. 오빠는 화가 나서 참지 못하는 상황. 매장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만 보고 있다. 화가 나면 가서 따지면 되지 테이블을 치면 어떡하니, 이건 아니지 ㅠ 우선 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 우선 나왔는데 생각할 수록 화가 나는건 사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스타벅스에서 더러운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두번 다시 가지 말자. 그리고 다음부턴 더 현명하게 화낼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서로를 진정시키고 거리를 걷는다. 아무래도 하루가 길 것 같다.
#푸쉬킨 미술관
거리를 한바퀴 쭉 돌고 우선 호스텔로 다시 돌아와 잠시 휴식. 비가 오니 이렇게 추울 수 없고 자꾸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구매한 방수 트래킹화가 아무래도 무거워 마지막에 일반 천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천이다보니 비가 오면 앞코부터 슬슬 젖기 시작해 침수되기 일 수. 오빠가 운동화 하나 더 사자 노래를 부르지만 구멍날때까지 신겠다는 일념으로 침수따위 개의치 않는 나.
비도 오는데 멀리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실내 미술관에서 구경하기로 결정. 우산 쓰고 조심조심 걷는다 해도 축축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다. 푸쉬킨 미술관 근처에는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이 있어서 대부분 두 곳을 함께 관광하는데 우리는 시간이 늦어 오늘은 푸쉬킨만 보기로. 그런데 근처에 다다라 미술관을 보니 건물 안에 있던 모든 가구를 꺼내놓고 공사가 한창이다. (비가 오는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망했다, 울자, 하고 우는 사진을 찍는데 사람들이 계속 어디론가 들어가고 어디선가 나온다. 으음? 이상하네? 싶어 우리도 따라 들어가 보니, 뒷문에서 미술관은 영업중. 원래 2층으로 들어가 1층 전시를 보고 나오는 동선인데 공사로 인해 1층 뒷문으로 들어가 2층까지 보고 다시 뒷문으로 나오는 동선. 영업을 하긴 하네!! 다행!! 손뼉을 치고 들어가 관람을 시작한다.
푸쉬킨 미술관은 러시아가 전쟁을 통해 침략한 국가들에서 가져온 미술품들이 있는 미술관이자 타국의 박물관 느낌이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미이라도 있고, 스핑크스상, 각종 석판들도 있고 그리스 등에서 가져온 각종 조각들- 비너스, 줄리앙, 피에타, 신전 기둥들 을 비롯해 다양한 미술품들-램브란트가 대표적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데 마음이 썩 좋진 않다. 원래 있었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
#무무
미술관에서 계속 걷고 그림보고 하는데 세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침에 먹은 스타벅스 샌드위치가 전부인 우리는 러시아에 간 사람들이 모두 추천하는 무무에 가기로 결정. 다행히 호스텔 바로 옆에 있다. 샐러드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먹고 싶은 양만큼 담는게 아니라 볼에 담겨져 있는 음식을 가져와 먹는 형식. 오베드에서는 마음껏 푼 다음 그램수대로 지불. 무무는 그릇별로 지불. 샐러드와 보르쉬, 치킨슾, 등갈비 두쪽과 소세지, 스테이크 한덩이, 맥주 두잔. 허기져서 눈에 뵈는게 없는 상황에서 주문. 2000루블 정도 나왔다. 돼지들아. ㅠㅠ 2층으로 올라가 보르쉬를 먹는 순간, 이거지!!! 하는 생각. 몸이 따뜻해지고, 입맛이 돈다. 너무 우리 입맛에 딱 맞는다. 예전 블라디보스톡에서도 알혼섬 니키타에서도 분명히 먹어본 보르쉬인데 무무에서 먹는게 제일 맛있다. (지역별로 넣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던데, 모스크바식이 딱 우리 입맛인 모양) 너무 좋다, 몸이 풀린다를 반복하다 과식. 오늘도 저흰 과식을 합니다 ㅠㅠ 이미 다 사온거니까 다 먹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ㅎㅎ
비가 와서 기운 빠진 우리는 어딜 쏘다니기도 애매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자니 아쉬워 선택한 미술관과 무무는 최고였다. 비가 오니 마음이 그렇게 추울 수가 없다 모스크바야. 내일은 좀 개어보자.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