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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곳저곳/떠나다.

파랑과 초록과 빨강의 도시, 리투아니아 / 빌뉴스



오늘은 리가를 떠나는 날, 어제 꽤나 쉬어서인지 몸이 가뿐하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남은 짐을 정리하고 어제 마트에서 사온 빵을 데운다. 냉장고에 있는 토마토와 우유를 꺼내 빵을 얌얌. 빵은 역시 피자빵. 소세지빵은 항상 먹고 싶어서 하나씩 사오지만, 기대하는 소세지 맛이 아니라 매번 실망이다. 홍차는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가게 하니까 패스. 지금 머무는 호스텔은 그닥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식사하는 자리에서 보이는 정원 뒤편은 쓸쓸한 느낌이 있어 마음이 머물었다. 요 정원과도 오늘 이별이구나.

방으로 돌아와 버스 시간을 보니 3분 후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한다. 으앗, 서둘러 짐을 챙기고 후다닥 방을 빠져나왔다. 오늘도 리가의 하늘엔 빗구름이 잔뜩. 아침부터 얇은 빗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그만하자, 비야. 어제 많이 왔다 아이가. 버스가 도착하고 오빠와 올라타 패스를 요금기에 대는데 빨간불이 똭. 뭐니? 이거 3일 패스 아니었어? 76시간 이용할 수 있는거 아냐? 헐랭. 하고 어쨌든 결제가 안되 4유로를 기사님께 지불. 오빠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거 시간이 아니라 날짜인가봐 =_= 그러지 않고서야 .... 이런 그지같은 경우가 있나 =_=;;; 리가 가시는 분들 패스 사용은 날짜인가 봅니다. 주의하시오!

터미널에 도착해 에코라인 사무실에서 티켓을 인쇄하고 잠시 기다리다 버스에 탑승. 이번엔 2층 버스다. 지난번엔 1,2번 예매했더니 기사님 바로 뒷자석이라 숨이 막혔는데 2층버스는 1,2번 앞이 유리창이라 전경을 바라보며 갈 수 있다. 몰랐어. ㅜㅜ 자리 대충 중간으로 아무렇게나 찍었는데. 다음부턴 좀 더 자세히 읽어봐야 할 것 같구낭. 버스는 생각보다 쾌적. 뭐, 안전벨트가 안되긴 했지만 와이파이도 빵빵 터지고 앞에 있는 모니터로 영화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다. 인터넷도 되는 것 같고. 좋구만. 하며 난 휴대폰을 들고 글 쓰기 시작. 오빤 지뢰찾기 게임하다 유럽 자동차 예약하다 네비게이션 다운받다 빌뉴스 관광지 검색도 하다 다양한 일들을 하며 4시간을 보낸다. 난 오직 밀린 글쓰기 글쓰기. ㅋㅋ

3시쯤 빌뉴스에 도착해 호스텔까지 캐리어를 끌고 걸어왔다. 오빠가 고장난 뒷바퀴를 앞바퀴와 바꿔줘 수월하게 캐리어가 끌린다. 고마워요 오빵. =) 짐을 풀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는 걸로!

#라부키 labuki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나온 맛집을 적당히 검색하여 그곳을 찍고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나타나면 거기서 밥 먹는걸로- 하고 길을 나선다. 빌뉴스의 날은 맑고 밝고 하늘은 높다. 오랜만에 만난 파란하늘이 반갑다. 가는 도중 스시 익스프레스라는 음식점을 발견. 스시 어때? 좋아! 그래? 그럼 좀 더 우선 보자, 하고 식당들을 주욱 둘러보는데 오빠는 이미 스시에 꽂힌듯. 스시로 하자, 하고 가니 오빠가 여긴 어때? 하면서 라부키라는 음식점을 추천한다. 여긴 뭔데? 하니 여긴 일식과 한식을 파는 음식점인거 같아, 으음? 한식? 한식 좋긴 한데 이게 정말 애매하게 만들면 한없이 맛이 없어지는 음식이라 불안... 오빤 리뷰가 괜찮은거 같다며 적극 추천. 좋아- 이쪽으로 가보지 뭐. 하도 이동. 시청 앞에 있다.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은 훌쩍 지났고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식당엔 우리 둘 밖에 없다. 스시장인은 외쿡인이고 두꺼운 메뉴판을 보이 일식과 한식이 차례로 놓여있다. 김치찌개도 있고, 잡채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는데, 난 영 땡기지 않는다. 차라리 비빔밥을 올리지. 검증되지 않은 된장찌개를 6-7유로나 내고 어찌 먹으라는거냐;; 하고 심사숙소하여 메뉴를 각각 2개씩 골랐다. 오빤 매운해산물수프(오빠의 주장으로는 짬뽕이란다)와 참치타다끼샐러드. 난 필라델피아 롤과 야끼우동. 그리고 로컬 맥주 두잔.
먼저 필라델피아롤. 합격. 얘는 맛이 없기 어려운 메뉴다. 무조건 합격. 넘나 맛있다. 롤을 입에 넣으면서 계속 하나 더 시킬까, 롤 하나 더 먹을까를 연발. 다음은 매운해산물스프. 오빠가 한 입 먹더니 고개를 갸웃, 나에게 한입. 나는 인상을 팍. 예상했다 예상했어. 이런 싱거운 맛일거라 예상했다. 마법의 스프를 넣은 약한 국물의 해산물국.이 좀 더 어울리는 이름이겠다. 난 별로... 오빠 많이 먹어, 하던 중 나온 세번째 메뉴. 매운 참치타다끼 샐러드. 이 나라 사람들은 매운게 뭔지 잘 모르나봐... ㅎㅎ 스윗칠리소스와 라면스프를 섞은듯한 맛의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다. 난 이것도 별로.. 네번째 야끼우동. 전분을 많이 넣었구나, 질척이네- 하고 한입 먹으니 단짠단짠 간장과 설탕으로 조린 우동이다. 그래도 이건 뭐 그럭저럭 먹을만. 오빠는 다 맛있다며 폭풍 흡입. 대단합니다. 짝짝. 가격 대비 만족도가 난 높지 않았지만 오빤 높았던 듯. 뭐- 식당은 호불호가 갈리는 걸로-

# st.john's church 벨타워
길을 따라 걷는다. 도시의 도로는 탈린만큼 복잡하지 않다. 정돈된 그리고 한 곳으로 모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굽은 길. 가는 길에 러시아 정교회도 보이고, 여러 기념품 상점들도 늘어서 있다. 리투아니아의 주요 기념품은 다른 발트3국과 마찬가지로 호박과 린넨인듯. 관련 상점들이 많다.
오빠가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며 그 앞으로 슬쩍 들어가본다. 캠퍼스 구경을 하는데도 돈을 내야하고 옆에 있는 타워에 올라가는데도 돈을 내야한다. 이미 시간이 5시 30분. 캠퍼스 입장은 6시까지. 타워입장은 7시. 시간에 쫒기기 싫은 난 전망대를 선택.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들어갔는데, 정말 엘리베이터가 있다. 헐.;; 또 엘리베이터를 보니 괜히 걸어 올라가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불쑥 튀어나와 우린 걸어올라간다, 하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 옆에서 오빤 으음..? 왜 굳이..? 하다가 이내 알았어- 하고 앞장을 선다. 그런데 나 왜 걸어올라간다고 했지? ㅠㅠ 너무 무섭다 너무너무 무섭다. 계단이 모두 비스듬히 놓여져 발을 옮기면 몸이 자연스레 옆으로 슬쩍 기운다. 공포체험이로구나 ㅜㅜ 오빠도 앞에서 부들부들 난 뒤에서 흑흑.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서질 않고... 부들부들 떨며 끝까지 올라간다. 엘리베이터 타고 오신 할아버지가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웃는다. 할아버지 정말 무서웠다구요.ㅡㅜ 마지막 최고 경사의 좁은 계단까지 오르면 전망대. 타워 안쪽에서도 바깥쪽에서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쫄보인 우리는 아직 밖으로 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아 안쪽에서 뱅뱅 돌며 경치감상. 조금 마음을 진정시키고 바깥 발코니쪽으로 나가는데... 여기도 경사. 판판하지 않고 또 비스듬 하다. 으아아아악 ㅜㅜ 난 또 부들부들. 이렇게 높은 곳을 무서워하면서 매번 전망대에 잊지 않고 오르는 이유는 뭘까. 전경은 언제나 아름답고 십자가 언덕도 잘보인다. 얼른 한바퀴를 돌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 마음을 진정시킨다. 가만히 있으려니 내려갈 용기가 생겼다. ㅋㅋ 오빠에게 걸어서 내려가자 하고 찡긋, 웃었더니 오빠도 찡긋, 웃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똭. 위험내서 내려가는건 안돼. 힝- 네네. 하고 엘리베이터 탑승. 투명 엘리베이터라 계단이 다 보인다. 엄청 내려간다. 나 여기 어떻게 올라왔니? 엘리베이터도 충분히 무섭다. 빌뉴스에서 전망대는 끝이다.

# 무작정 걷기
다음 목적지는 정하지 말고 우선 걷기로 한다. 뭐 지나가다 미술관도 보이고 성당도 보이고 타워도 보이고 여러가지 관광지들이 보이지만, 우선 오늘은 많이 걷고 도시의 기운을 느낀다. 다행히 날이 밝고 쾌청해 걷기에도 딱 좋은 날씨.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지나 극장 앞을 지나고 자라 매장도 구경하고 맥도날드도 있다. 아시안 푸드를 판다길래 그쪽으로 건너가 메뉴판을 들척거리고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공연장도 구경한다. 그러다 코너에서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키노. 영화관이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이것저것 팜플렛도 구경하고 소파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도 하고- 영화관은 여전히 좋구나.
강 건너편에 성당도 보이고 성같이 생긴 건물도 보인다. 가볼까? 싶어 성당쪽으로 이동하니 그곳은 공사중. 성 같이 생긴 건물은 뭐지? 하고 그 앞을 슬쩍 가보니 건축사무소. 우와, 이런 건물에서 설계하면 막 예술작품 나오는거 아냐? 아닐껄? 계속 하자 보수 하자는 얘기만 할껄? 아네네- ㅋㅋ 다시 건물을 빠져나와 강가를 따라 걷는다. 초록의 나무들이 무성한 빌뉴스의 저녁은 이렇게 길고 이야기가 많다.

# 게디미나스 캐슬 타워
아까 세인트존스 벨타워에서 초록 산 두개가 보였는데 그 중 하나. 게디미나스 타워다. 해질무렵 이 언덕을 바라보며 올라갈까 말까를 어찌나 망설였는지. 혹시라도 내일 비가 오면 못올라갈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오르기로 결정. 와, 우리 오늘 정말 많이 걷는구나? ㅎㅎ
돌이 깔린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걷는다. 캐리어를 끌고 갔다면 욕이 나올법한 길인데 다행히 이 몸뚱아리 하나 끌고 올라가니 발에 지압하는구나, 하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시원하다, 지압하는구나. (부들부들 ㅎㅎ) 한참 헉헉대고 올라가 슬쩍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기분 좋은 빌뉴스의 풍경. 와, 내가 아까 전망대 오르면서 다시는 빌뉴스에서 전망대 안간다고 하지 않았나? 같은날 이렇게 두번 오르는건 반칙 아닌가? 키득거리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또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지압하는구나... 부들부들. ㅋㅋ
언덕 정상에 올라 해질녁의 도시를 바라본다. 하늘은 노을진 오렌지빛으로 천천히 물들어 저물고 도시는 하나 둘 가로등을 켜기 시작한다. 바람은 적당히 불어 지친 우리를 쉬게하고 코끝을 간지럽히며 기분좋게 우리를 가로지른다. 기분좋은 저녁. 아름다운 거리와 사랑하는 사람. 모두 이 곳에 있구나. 한국에서 서울에서 난 왜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조급해 그 아름다운 도시에서 난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나,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일이 너무 많아서,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서, 여러가지 핑계를 찾아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듯. 내 마음이 무엇인가에 쫒기듯 여유롭지 않았고, 계속 다음 할 일을 생각하며 초조해 했다. 미리 걱정해서 좋을 것이 없는 것들을 걱정하면서 내가 가진 소중한 시간들을 소비해 버렸다.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 금새 그 생활이 원래 내 삶이었던것처럼 적응해 버리면 어쩌지. 두려워진다.

# 리미 마켓
언덕에서 내려와 점심 먹을때 봐둔 마켓에서 장을 보기로. 내가 읽은 블로그 글들은 발트 3국 중에서 빌뉴스 물가가 제일 싸다고 하는데, 오빠는 자꾸 빌뉴스가 가장 비싼거 같다며 눈을 부릅뜨고 가격표를 쳐다본다. 아껴서 나쁠 건 없으니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마켓에 가면 알 수 있다고 하니 마켓에 가서 비교해 봅시당.
마트에 들러 물과 키위주스, 딸기, 우유, 식빵 등을 구입. 내일 아침 먹을 식량이다. 항상 모든 도시에서 요거트를 사서 원샷을 하곤 했었는데, 리가에서 식초요거트를 먹고난 이후엔 영 요거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사라졌다. 내일 빵 구워서 잼 발라서 맛있게 먹어야징-

빌뉴스에 어정쩡한 시간에 도착하여 제대로 하는 것 없이 하루가 지날 줄 알았더니 역시 우린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하는 타입인듯. 엄청 걸으며 도시 구경은 제대로 했다. 입장시간이 정해져있는 곳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발로 걸으며 바라본 도시의 풍경도 잊지 못할 듯. 특히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이 도시에서 말이다. 내일은 미술관이며 성당이며 빌뉴스에서 자랑하는 곳들을 들어가 봐야지. 긴 하루가 이렇게 지난다. 수고했어, 오늘도. (feat.옥상달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