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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곳저곳/떠나다.

폴란드의 베르사유는 참으로 소...소박하구나, 바르샤바

어제 사온 핫도그 빵에 아보카도 등등을 넣어 아침부터 든든히 먹고 폴란드의 베르사유로 불리우는 빌라노프 궁전으로 가는 날. 폴란드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오늘은 좀 서둘러 집에서 출발.

구글맵을 통해 확인하니 숙소 근처에서 궁전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을 하나둘 바라보며 궁전에 도착. 근처에 맥도날드도 있고 혹시 배고프면 들러도 좋겠다 싶다. 오빠와 손을 잡고 궁전쪽으로 휘휘 걸어간다. 그런데 왠 신부님같으신 분에 앞쪽에서 뒤에 무리를 이끌고 걸어나오시는 것. 뭔가 싶어서 유심히 바라보니 뒤쪽에 있는 성당에서 장례식이 치러진 모양이다. 유골함을 든 남자와 뒤 따르는 힘없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바르샤바에서는 결혼식도 보고 장례식도 보는구나. 사람 사는 일이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가족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티켓부스에 들러 정원입장티켓과 궁전입장 티켓을 구매. 빌라보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폴란드의 베르사유로 불리운다는 사람들의 입소문 하나만 믿고 가는 탓에 기대가 있다. 실제 베르사유에 가보진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여행하며 보아온 러시아의 베르사유 뻬쩨르고프도 있었고, 베르사유라는 명칭이 붙지도 못했지만 아름답고 훌륭한 궁전이나 성당도 많았으니 우리의 눈이라는 게, 기대치라는게 어느정도 높아져 있는 상황.

궁전에 들어가기 전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티켓부스에서 궁전쪽으로 이동하면 정면에 궁전이 보이고 왼쪽에 있는 정원을 따로 둘러보는 형태인데, 궁전과의 첫인상이 우와- 하며 감탄을 자아내진 않는다. ㅎㅎ;; 뻬쩨르고프에서 황금으로 치장된 온갖 장식물과 궁전을 본데다가 각종 대리석과 조각으로 섬세하게 빚어낸 건물들도 자주 본 터라 빌라노프는 오히려 쓸쓸하고 소박해 보이기까지... 안에 들어가면 좀 다르려나, 하고 실망을 감추지 못한 우리는 우선 정원으로. 눈이 너무 고급이 됐어. 한탄하기도 하면서 ㅋㅋ

네이버 검색에 의하면 정원은 바로크 정원 외에 영국식 정원과 장미정원이 있다고 나와있는데, 뭐가 바로크고 뭐가 영국인지 =_= 당췌 알수가 없...는 상황에서 정원의 풀을 뽑고 잔디를 정리하는 학생 무리 같은 아이들을 많이 발견. 현장학습 왔나봐- 쑥덕쑥덕, 선생님이 옆에서 안시켜도 잘하네- 와 같은 같잖은 소리나 하면서 지나가는 우리. 그냥 초록이 무성할 뿐 우와 예쁘다의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숲 안쪽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같은 것이 있어 그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가 돌아나와 호수쪽으로 다가가니 백조 두마리가 보인다. 백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야!! 흥분한 우리. 이 정원의 마스코트는 백조였구나, 하면서 시커먼 백조의 발이 접혀 안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좋아하고 있다. 이럴거면 동물원에 가는 거였는데;; 한참 백조와 사진찍고 놀다가 다시 산책. 나무가 많아 산책하기엔 좋은 정원이다.

궁전으로 들어가자, 하고 총총 걸음으로 입구로 이동. 건물 지하로 내려가서 아랫층부터 보는 형태.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는데, 지하도 있고 2-3층도 있나 갸웃거리며. 내려가 가방을 맡기고 티켓을 찍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그곳을 점령한 자들이 있었으니... 현장학습 나온 학생분들 되시겠다. 몇개 클래스에서 단체로 방문했는지 선생님 한분이 전시실 중앙에 서서 전시실을 둘러싸고 앉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강의중. 우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림을 보는 둥 마는 둥 조각을 보는 둥 마는 둥 이동하기 바쁘다. 이렇게 단체 관람객이 점령해 버리는 미술관이라면 입장료를 깎아줘야 하는거 아닌가- 방 전체를 점령하고 있는 와중에 일반 관람객은 어찌 둘러보라는 건지 배려없는 빌라노프 궁전. (점수가 1 깎였습니다.) 천장이 낮고 여러개의 작은 방들에는 그림들이 여유없이 붙어있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건지 중간에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놓치고 마는, 사람을 몹시 집중하게 하거나 대충 지나치게 하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하게하는 공간 OTL 다 봤다, 많이 봤다 아이가- 이제 가자 하고 궁전을 뒤로 하고 나온다. 내가 폴란드에 다시 오게 되면 요 궁전은 재방문은 안할거 같으다.

배가 고파져 오빠에게 칭얼칭얼. 배가 고프다. ㅠㅠ 그런데 왠지 맥도날드는 안땡긴다. ㅜㅜ 우리 오빠의 고단함 중의 하나라고 하면 내 배고픔을 달래는 것과 먹기 싫은 메뉴는 정해져 있다는 것. 비슷한 식사를 반복해 하는걸 그닥 선호하지 않는 나이기에 자주 보이는 프랜차이즈 햄버거집도 선호하지 않고 라면같은 것도 별로 안좋아하고 어제 먹었던 것 그대로 다음날 다시 먹는 것도 싫다. 요런 나의 기호를 아는 오빠는 매 식사때마다 얼마나 고민이 될까, 짜증이 날까 싶으면서도 싫은건 싫은걸. 하는 나의 못된 마음. ㅋ

맥도날드를 제외한 근처 식당 중에서 적당히- 햄버거집으로 다시 선택. ㅎ 프랜차이즈 아니고 수제버거니까 좀 다를꺼야, 하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우겨보는 나. ㅋㅋ 햄버거를 고르면 바로 패티를 구워 만들어주는 집이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고기도 두툼하고 빵도 맛있어서 합격.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가격이 비싸다. 흥.;

오빠의 정보에 따르면 이 근처에 한국 마켓이 있다고 한다. 우와- 그럼 가봐야지! 하고 구글맵을 켜고 딸랑딸랑 걷기 시작. 길을 건너고 대형 빌라 단지 안으로 들어와 쭉 걸어들어가니 왼쪽으로 보이는 한국 마켓. 드앗. 너무 느닷없이 나와 조금 놀랐지만, 마음을 진정하고 안으로 쏙 들어가니 반가운 한국말이 들린다. 어서오세요- 우와와... 한국말. 우리 말고 다른 한국사람이랑 대화한다. 안녕하세요!!! 신이난 우리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라면 봉지들. 우와와!! 라면이다!!!! (라면 안좋아한다고 방금 하지 않았나) 각종 한국 음식에 눈돌아 가는 우리와 우리가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으시는 주인 아주머니. 여행온거냐, 얼마나 됐냐, 언제 왔냐, 폴란드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어떻게 알고 왔냐 등등 우리는 곧잘 대답해 드리면서도 눈은 매섭게 음식들을 캐치. 아주머니는 LG 폴란드 지사에서 오랜기간 일하시고 영주권이 나와 이곳에 자리잡으신 케이스. 전자쪽에서 근무하셨던듯 하다. 근처에 회사가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꽤 있다고. 신기하다앙. 동생아, 너도 출장 오면 안되겠니?? 불닭볶음면 2봉지, 비빔면 2봉지, 너구리 2봉지를 고르고 김포쌀 하나와 각종 쌈장, 고추장불고기소스, 총각 김치까지 바구니에 담아 넣는다. 아주머니께서 밥 안먹었으면 여기서 김밥같은것도 판다 하시는데 눈물 나올뻔. 방금 햄버거 먹고 왔어요 ㅜㅜ 파는 줄 알았으면 안먹고 여기 와서 먹었을텐데. ㅜㅜ 아쉽지만 김밥은 담에 스스로 해먹는걸로.

뭘 샀는지 가방이 제법 무겁다. 이제는 다시 집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면서 지나온 와지엔키 공원을 들러서 산책한 담에 걸어서 들어가자 했는데, 이렇게 피곤해서야 공원에서 다시 걸을 수 있겠나 싶고.;; 꾸벅꾸벅 졸면서 버스에 앉아 있는다. 와지엔키 공원 끝에서 내려 쭉 공원을 관통해 밖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우리 체력으로 지금 그 코스는 완벽히 무리인 상황이라 엊그제 버스 탔던 쇼팽 동상 앞에서 내려 걸어오는 걸로 코스 변경. 다시 찾은 쇼팽 동상은 여전히 늠름하고 멋있다. 죽을때까지 고국을 그리워해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고 묻혔고, 내 심장은 폴란드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바르샤바에 있는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만큼 조국을 사랑하고 아꼈던 쇼팽. 그의 사랑에 화답이라고 하듯 도시 전체는 쇼팽에 대한 그리움과 찬미로 가득하다. 어찌보면 상술로 보이기도 하는데, 좀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쇼팽을 사랑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와지엔키 공원을 빙글빙글 돌고 안가본 길도 걷고 하며 천천히 공원 안 공기를 들여마시니 다시 기운이 솟는듯. 오빠는 만나는 다람쥐에게 밤을 주겠다며 예쁘게 생긴 밤알을 두세개 주워 나 좀 주고 오빠 좀 갖는다. 그리고 만난 다람쥐. 손을 내미니 반갑게 뛰어 오는데 손에 든 밤을 보니 팽하고 가버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밤알을 주워 먹는다. 야- 내가 주는거랑 떨어진거랑 뭐가 달라 !! (사람에게 기대하는 먹을거리가 있겠지;;;) 요런 다람쥐도 6시가 넘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근무에 지친 다람쥐가 칼퇴보장을 요구하며 쏙 들어갔다고 말하는 오빠. 주말엔 사람이 더 많아 주말근무까지 하느라 평일엔 파업을 할 지경이라고 옆에서 진지하게 말하는데- 눈물 나올뻔. 니 얘기잖아. ㅜㅜ

어둑해질무렵까지 공원을 걷다 밖으로 나와 숙소로 향한다. 가방 안엔 쌀이며 김치가 한가득이라 무겁지만 오빠와 나눠 들으니 많이 무겁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도 이렇게 서로의 짐을 나눠들고 좋아하는 공원을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옆에 이렇게 든든한 오빠가 있다면 무거운 짐도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꺼야.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