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정말- 이놈의 정류장은 몇번 정류소에 어떤 버스가 몇시에 도착하는지 당췌 정확히 알려주질 않는다. 크라쿠프로 오는 버스 정류장을 잘 못 찾은 경험이 있는 우리는 우리가 예약한 버스가 이 정류장에 오는게 맞는지, 맞다면 몇번 게이트로 오는지 알고 싶어 정류장 돌기를 여러번, 모니터 바라보기를 수백번하였으나 버스를 탈때까지 결국 정확한 안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이 타들어가는 오빠와 피곤에 찌들어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갱양. 결국 오빤 갱양이 먹을 와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부다페스트행 폴스키 버스를 발견. 무사히 탑승하여 부다페스트까지 도착! 버스는 좁고 와이파이는 된다고 해놓고 안되고- 이래저래 마음에 안드는 폴스키 버스욀세다-
부다페스트의 구석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좀 쉬고 싶었으나 시골 정류장에 도착한 듯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정류장엔 앉을 자리도 마땅찮고 커피숍도 다 서서 마시거나 뭔가 앉고 싶어지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심지어 우리는 돈도 없다. 폴란드에선 폴란드 화폐를 썼고 헝가리에선 포린트가 단위인 헝가리돈을 써야는데 가진 돈이라곤 유로화와 달러뿐. 커피 한잔 사먹을 돈도 없는 주제에;; 환전부터 하자 싶어 100달라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지하철역 지하에서 환전소 발견. 수수료 생각할 겨를 없이 우선 환전. 돈이 생겼다. =) 이곳에 오래 있을 순 없을 것 같아 우선 숙소 근처로 가서 커피라도 마시며 시간을 죽여볼까하고 트램을 타기로 한다. 교통비는? 어짜피 이동 많이 할건데- 3일권 살까? 콜- 3일권으로 사면 지하철이든 트램이든 버스든 마음놓고 탈 수 있으니 좋다. 지하철역에서 체크카드로 3일권 두장 구입. 열심히 타 봅시다.
좁고 길다란 트램에 올라 아침 10시의 부다페스트 거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어느새 내가 헝가리까지 왔구나, 시간 참 빠르다. 반짝반짝 빛을 담은 물빛의 도시. 싱그러운 햇살이 기분좋은 아침의 부다페스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우리가 머물 숙소의 호스트로 부터 메일이 와있다. 전 게스트가 일찍 체크아웃을 하여 청소중이니 10시반까지 와도 되겠다고- 앗! 이게 왠 행운! 오빠!! 호스트가 지금 와도 된대!! 쉴 곳이 생겼어!! 사실 야간버스는 세번째지만 매번 적응이 안되는 우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니까;;;
숙소로 서둘러 이동해 호스트를 만나고 인사를 나눈뒤 짐만 놓고 빠져나왔다. 청소하는데 한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밖에서 좀 놀다 들어가면 될듯. 배가 고파질 시간이라 아침을 먹기로 하고 커피숍으로 쑉.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는데 커피 머신이 특이하게 생겼다. 우리나라 식당에 있는 대형 보온물병처럼 생겼는데 머신이다. 커피콩을 스탬프해서 넣으면 쪼로로 커피 추출. 이 기곈 어떻게 청소하냐;; 같은 쓸데없는 걱정과 함께 커피 한모금 꿀꺽. 맛. 있. 다. (행복) 커피도 맛있고 샌드위치도 맛있다. 오빤 배 안고프다고 나만 샌드위치 하나 시켰는데- 안줄꺼야 하면서 홀딱 다 먹어버림. 살찌는 소리;; 노천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보고 하늘보고 바람 맞으며 커피 마시는 기분이 쏠쏠하다. 이대로 다시 돌아가도 좋겠지만, 한번 숙소에 들어가 버리면 두번다시 나오기 힘들 것만 같다. 조금 더 힘을 내어 돌아다녀 보기로-
숙소에서 호스트를 만났을때 우리에게 부다페스트에서 탈 수 있는 시티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받았다. 남자친구 아이디라고 하던데 ㅋㅋ 모처럼 자전거도 탈 수 있으니 숙소에서 세비체 온천이 있는 광장까지 가보자, 싶어 자전거를 덜컥 빌렸다. 이곳은 자전거 도로가 꽤나 잘 되어 있어서 도로에 표기된 라인만 잘 따라가면 운전은 어렵지 않다. 처음엔 신이 나서 열심히 패달을 밟는 갱양. 바람이 시원하구나, 즐겁다, 하며 달리고 있으니 다리가 슬슬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출발하고 시간이 지난것 같은데, 오빠는 거의 다 왔다는 소리를 안한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발뒤꿈치에 납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할 무렵 소리지르는 갱양. 오빠아!!! 어디까지 왔냐!!! ...으음? 아직 반..반도 안왔는데? 생각보다 머네. 악!!!! 갱양죽는다. 소리소리를 지르는 나. ㅋ 자전거를 그만 반납하고 싶어도 반납할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강제 운동행. ㅡㅜ 야간버스 타고 와서 졸리고 체력은 바닥인 상황에서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몇 km를 달리는거냐;;; 울면서 페달을 밟으니 눈 앞에 보이는 광장. 바로 옆에 자전거 반납소도 있다. 돌아갈땐 지하철이다. 무조건 지하철이다.
#영웅광장
자전거를 타고 이쪽 광장까지 힘들게 달린 이유. 오직 이 광장만이 주요 관광지에서 벗어나 있다. 이쪽은 따로 시간을 내서 돌아봐야하는 관계로 오늘 요 광장을 보고 들어가 쉬는게 좋을 것 같아 무리하게 달렸다.;; (물론 난 이렇게 달려야 하는 줄 몰랐지) 반원 모양의 광장을 영웅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라 영웅광장이라 불리우는 듯 하다. 오른쪽과 왼쪽에 서있는 신들의 종류가 각각 다르다고.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광장이라 슥슥 보고 나무가 울창한 안쪽으로 입장-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성도 보이고, 공연장이며 공원이며 숲길이 아기자기 하다. 한쪽에선 피아노 콘서트가 매 정시에 열린다며 티켓을 판매하는 사람도 있고, 느긋하게 볕을 즐기며 산책하는 사람들, 쉽게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을 붙잡고 정신없이 씨름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서나 보이는 여유로운 모습들. 따뜻한 햇살아래 걷고 있자니 몸은 점점 더 노곤해지고, 어깨는 자꾸만 무거워지는게 눕고 싶은 마음 뿐. 여기서 누울까, 저기서 누울까, 누워도 돼? 누우면 안돼? 오빠에게 칭얼칭얼- 오빤 잔디에 개들이 오줌싸고 갔다며 눕지 말라 난리인데, 난 눕겠다고 난리다. 이 잔디에 이 햇살에 이 온도에 지금 안누우면 난 어디서 누울 수 있어. 에라 모르겠다하고 언덕에 옷을 깔고 벌러덩- 누우니 오빤 옆에서 종종거리며 이건 아닌거 같은데;; 울상이다. 여긴 아니야? ㅇㅇ 알았어. 그럼 다음에 눕는다. 예고하고 다시 걷는다. 이번에 보이는건 나무 숲. 숲!! 숲 좋네. 한쪽에선 공차는 청년들의 모습도 보이고. 여기다!! 난 여기서 눕는다.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포기해버린 오빠. 그늘 아래 누워 눈을 감고 있으려니 정신이 오히려 말똥해 진다. 이런 순간 잠들어야 되는거 아닌가.; 동글동글 눈을 뜨고 하늘을 본다. 물통에 파란색 섞으면 이런색이려나, 흰색을 좀 더 섞어야 하나- 시리게 파란 하늘을 보며 눈에 담다 사진을 찍다 오도방정. 그러다 앞을 보니 왠 아저씨가 개를 산책시키시는게 눈에 들어온다. 신나게 풀밭에 들어와 쉬하는 멍멍이. 오빤 저렇게 여기도 쉬했을껄- 말로만 들었을땐 왜이래하고 말았는데 눈 앞에서 멍멍이가 적나라하게 용변을 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갈..갈까?
#세비체 온천
온천에 들어간건 아니지만, 그 앞에서 대략 보고 나온 사람으로 한마디. 사람이 많다. 매우. 그리고 단체가 많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수영복을 들고 우르르 들어가는 외국인 아주머니들을 꽤나 만났다. 깔끔하고 깨끗해 보였으면 내일이라도 한번 와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텐데 시설은 낡았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도 받지 못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 온천을 가야할까 하는 의문. 호스트가 추천해준 온천도 있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세비체가 유명하다고 여기 어떠냐 물으니, 세비체도 유명하긴 한데 본인은 자기 추천 온천이 더 좋다고- 다시한번 강조. 여긴 아니라는 말이구나.; ㅋ 코 앞까지 와 눈으로 확인했으니, 됐다. 싶음.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고 간다. 3일권을 샀으니 마음껏 이용해야지.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중 노란색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지하철이라고 한다. (호스트 설명) 만들어진 지도 꽤 오래되었다고 호스트가 자랑해서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탄다. 정말 도로 위를 달리는 트램과 비슷한 아담한 사이즈의 지하철. 요 지하철이 달리는구나- 거칠게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는 오빠가 찍어놓은 great market으로 갑니다.
# Great Market
건물 안에 있는 3층짜리 대형 시장쯤 된다. 블로그를 검색하니 가서 구경은 하되 뭘 사거나 사먹진 마세요- 라고 써있던데, 구글지도에서 great market이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오빠가 얼마나 크길래! 하며 가고 싶은 장소로 콕 찍어 놓았다. 지하엔 수산물, 지상은 과일과 육류, 2층은 기념품샵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지나가며 오늘 저녁과 내일 먹을 야채들을 구매. 아보카도, 레몬, 토마토, 청포도를 산다. 내일 아침엔 아보카도 과카몰리를 만들 예정. 생각만 해도 맛있겠네. 배가 고프다는 오빠. 그럼 여기서 뭘 좀 먹자, 했더니 그건 싫단다. 그래? 그럼 좀 더 구경. 좀 더 구경. 하다가 완전 기름 똑 떨어진 자동차마냥 힘이 하나도 없는 호군. 집에 가자- 하고 오늘 구경은 강제종료.
느즈막히 숙소에 돌아와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묘하게 엄청 피곤한데 잠은 오질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보고 뿜이나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으니 뚱한 표정으로 올라오는 오빠. 왜그러는데- 배고픈데 어쩌고 저쩌고- 오빠와 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미스. 오빤 먹고 싶은 음식을 두고 우리 갱이 스시 해줘야지, 요렇게 얘기하면 스시에 관심 없는 난 스시? 갑자기 왠? 별론데? 하면서 몇 번 내가 지나쳤던 모양. 자네가 먹고 싶은 음식은 자네가 먹고 싶다 말해야지, 왜 나를 해준다고 해서 고런 반응을 이끌어내는가. 그건 자네가 잘 못 했네. 다른건 내가 다 잘못했네!! 다시 스시 사러 가세!!
하여 다시 시장으로 갔습니다. ㅎㅎㅎ만, 6시에 시장이 문을 닫는 모양. 수산시장은 이미 끝났고, 1층의 야채와 정육점들도 문을 닫고 있다. 남은 몇 안되는 가게들 가운데 햄 파는 가게를 발견, 달려가 터키햄과 오빠의 눈썰미로 찾아낸 완전 맛있어보이는 햄 덩어리를 구입. 오빤 햄 구워먹을 생각에 눈이 반짝 반짝. 신나게 나가는데, 사람들이 자꾸 지하로 내려간다. 왜죠? 지하 수산코너는 다 문을 닫았는데 왜 지하로 가는거죠? 싶어 우리도 지하로 쪼로로 따라 내려가니 보이는 대형 마트. 와- 이정도면 해산물도 팔겠다 싶어서 후딱 들어간다. 마트에 들어가니 눈이 뒤집힌 우리 둘. 해산물은 무슨. 이것저것 주워담기 시작. 헝가리 무슨 와인이 유명하다던데? 하면서 와인도 한두병 스윽 집어넣고, 우유가 먹고 싶었다며 우유도 하나 뮤즐리도 하나, 요거트도 하나 하면서 이것저것. 장볼 생각은 안하고 온터라 가방도 없는데 엄청 카트에 넣고 있는 둘. 결국 장바구니까지 구매하여 나오고 말았따는;;;
무거운 짐을 들고 숙소에 돌아가 이것저것 해보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빨리 먹자는 생각에 아껴놓은 너구리 2봉지와 밥, 그리고 방금 사온 햄을 슥슥 잘라 햄을 굽는다. 오랜만에 맡는 라면 스프 냄새에 정신을 잃을 지경. 너구리를 뚝딱 해치우고 밥까지 싹싹 말아 국물까지 비우고 이게 햄인지 훈제 삼겹살인지 당췌 구분되지 않는 햄구이를 먹으며 부다페스트의 첫번째 날을 마무리. 부다페스트가 야경이 유명하다는 얘길 귀가 닳도록 들어 혹시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모레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오늘 야경보러 가야해! 외쳤는데 내 체력은 야경까지 보러 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잠이나 푹 자고 씩씩해져서 돌아다니자. 오늘은 여기까지.
세상 이곳저곳/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