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8일 금요일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w. HM,HJ
작년 국제공연예술제때 보려던 작품이었다.
그날 엄마가 올라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술의 전당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고속터미널로 옮겼었더랬지.
함께 보기로 한 동생이 다음날 이 공연 강추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리뷰에서 고선웅 연출과 연극에 대한 칭찬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인어도시(고선웅 작,연출)처럼, 쉬이 잊혀질 연극이었다.
못봤으면 그만인거지뭐-
그런데 1월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고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재공연까지 한다니 보지 않으면 안될, 꼭 봐야만하는 연극이 되었다.
'칼로막베스' (스포일러 有)
연극의 기본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따른다.
작년 극단 竹竹 의 맥베스를 보며 잠든 기억 & 트라우마 (...죄송합니다)가 있어 살짝 걱정스러운 면 없지 않았으나
고선웅 연출님과 이명행 배우님(♡)만 믿고 관람.
배우들이 빠른 속도로 대사를 뱉아내는 바람에 제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비루한 귀는 보는 내내,
응? 음..응?? 이러면서 듣기보다 보기에 주력하고 말았지만...
들린대로 파악한 연극의 배경.
정부는 범죄자를 교도소에 가두는 대신 세렝게티베이라는 땅에 방목하게 되고 범죄자들의 자손들이 그 땅을 뺏고 빼앗으며 살아간다. 범죄자의 자손이니까 함께 있으면 자멸할 것이라는 생각이어서였을까? 실제로 그들은 공존 대신 칼로 막, 베며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배신 혹은 충성을 맹세하며 살아간다. 눈 먼 예언자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막베스. 지나가는 말인지 예언일지 알 수 없는 한마디에 그의 삶은 흔들리고 그 말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 말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 쏟아지는 대사들
연극의 모든 배우들은 대사를 쏟아낸다. 조금 더 천천히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아- 하며 감탄할지도 모르는 대사들을 달달달 외워 국어책 읽듯 건조하고 빠르게 읽는다. 나중에 대사만 곱씹어 곰곰이 생각하면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아내는걸 보며 작가의 넘치는 자신감 - 너희들 이 대사가 어떤 대사인줄 알아? 알게되면 깜짝 놀라 기절하고 말껄? 난 이런 말들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작품을 보여주는 중이야. 뭐 이런 느낌.
* 범죄자의 자손이라고 다 같은 범죄자는 아니겠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폭력적일 수는 있어도 남들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다. 굳건한 충성을 맹세하다가도 때로는 배신하며 살아가는 사회 속의 우리들 모습와 같다. 그러나 끝까지 진짜 나쁜놈 한 명쯤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일까. 난 이 연극에서 진실로 나쁜놈이 한 명이 있다면 그는 막베스 妻이길 바랬고, 그녀가 꿋꿋이 그녀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막베스가 죽을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길 바랐다면, 욕심인걸까. (아님, 배우에 대한 애정? ㅎㅎ) 일을 저지를 때만해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막베스 妻가 막베스가 보이는 이상행동에 영향을 받아 그녀까지 자멸하는 모습을 보며 '이래서 여자는 남편을 잘만나야돼'했으면 이상한거야? ㅋㅋㅋ 연극 레이디 맥베스는 어떤 내용인가 싶어 찾아봤는데 결국 자멸에 이르는 건 같더이다만. 그녀가 살면 이건 셰익스피어가 아닌건가. 살아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살아남아 평생을 지옥속에서 떠돌며 살아, 사람들이 저 미친년은 누구야? 했을때 그녀의 이야기가 오래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길.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더 좋겠다.
* 결국, 관리대상.
연극의 마지막. 무대 뒤로 흰 막이 덮힌다. 마방진 배우들은 마방진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고 칼 싸움을 하며 한 시대를 살아내는 중이다. 결국 막베스가 죽고 그의 몸은 매달리며 뒤쪽 막에 불길?이 흘러내리는 영상이 보여진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
"지금부터 칼이 아닌 총과 실탄을 지급하기로 했다. 칼로막베스의 시대는 갔다. 이제부터는 막쐈어의 시대이다."
셰익스피어의 마녀 셋이 매트릭스의 오라클과 오버랩. 막에 쏟아지는 영상은 매트릭스의 암호 화면 같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너희들도 프로그램(관리대상)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까지. 결국 누군가 짜놓은 판(마방진)안에서 그들은 놀아나고 있었던게지.
나는 열심히 삶을 살고 있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나의 고민과 결정 역시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걱정 역시 신이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내가 코스프레하고 있는건 아닌가. 결국,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 있는데 나의 뜻과 무관한 신의 뜻은 아닌가. 급 운명론적인 사고로 생각의 방향을 틀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게.....
두시간 내내 지루할틈없이 재미있게 잘 봤다.
다리는 좀 아팠지만.